[GL] STILL MOVE 스틸 무브

11. “저 괜찮다니까요? 한 잔 더 주세요.” 민유하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잔을 내미는데, 그 얼굴을 보니 지금 이 상황이 퍽 재밌는 모양이다. 그게 또 정음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불행을 알아달라는 건가? 알코올 중독이라니. 그런 미련한 중독이 어딨나. 아, 그런데 하필 6개월. 그렇다면…… “금주는 오로지 이 여행을 ...

10. 두 사람이 나가고, 욕실 문이 닫혔다. 유하는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서정음과 페페, 그들이 문밖에 있는 게 이상했다. 하긴, 문 안에 있는 유하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유하의 마지막 기억은 여자에게 안겨서 어디론가 가는 거였다.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지만, 여자의 품이 어느 순간 편해졌던 기억은 있었다. 그 편안함에 긴장을 놓은 탓인지, ...

9. 순간, 기묘한 정적이 생겨났다. 민유하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삽시간에 사라지고, 정음의 크지 않은 목소리는 욕실의 천장을 치고 내려온 것처럼 울림이 컸다. 울면서 가슴을 쥐어뜯던 몸은 물론 숨까지 멈춘 것 같던 유하는 한참 만에야 얼굴을 들었다. 퉁퉁 부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데, 세상에 존재할 리 없는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니...

8.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공중으로 흘러나오던 유하의 페로몬이 아주 살짝이지만 옅어졌다는 거다. 그러니까 억제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중이라는 얘기고, 이렇게 즉각 반응이 오는 건 급성이었다는 얘기였다. 급성이면 억제제 한 알만으로도 히트를 가라앉히는 데는 충분할 거 같았다. 뒤로 털썩 기댔던 몸을 조금 일으켰다. 민유하는 여전히 깨지 않았지만, 아...

7. 민유하는 연정의 부고 소식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상주가 되어달라는 부탁에도 대답하지 않았단다. 멍한 눈으로 가방만 받아들었다던 유하는, 결국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연정의 유골을 안치한 납골당에도 나타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6. 페페는 작고 아담한 체격에 동글동글한 이목구비를 가졌는데, 덕분에 무해한 초식 동물과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양이나 사슴, 때론 토끼나 강아지를 닮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생김의 특징보다는 분위기가 워낙 밝고 귀여운 탓이다. 그러나 페페의 본질은 그런 연약한 피식자와는 아예 거리가 멀다. 한국인이 이디스에서 살아남은 걸로 모자라 제대로...

5. 정음은 마음을 이로 악문 것처럼 다잡고 발을 옮겼는데,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 유하랑 결혼하려고.’

4. 아까는 풀어헤쳐져 있던 머리카락이 높은 곳에 한 데 묶여 있었고, 입고 있던 코트도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서 뛰어요!”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여자는 유하를 향해 무섭게 소리쳤다. 그건 명령과도 가까웠다. 그러나, 잠시 생각한 유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이 이상 나은 선택지가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여자는 왜 다시 ...

3. “나, 당신이랑 하고 싶어요.” 바람을 탄 것처럼 빠르게 나아가던 여자는 순간적으로 살짝 흔들렸다. 마치 작은 돌멩이에 발끝이 걸린 것처럼. 그러나 그뿐,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계속 달렸다. 스치는 바람에 향은 씻겨나가듯 옅어지고 말라갔다. 그게 아쉽고 섭섭한 동시에 안달이 함께 일었다. “당신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나랑 해요....

<와이 낫 미> <위드 베이비> 와 <미스>가 같은 오메가버스지만 서로 세계관이 달랐듯, <스틸 무브> 역시 기존 오메가버스와 그 세계관에 차이가 있습니다. 세계관은 글만 읽으셔도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게 쓰려고 합니다만, 오메가버스가 처음이신 분들과 미리 알고 시작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다시 정리해봅니다. * ...

안녕하세요. 이번에 포스타입 작가 독자 이벤트에 선정되어 이벤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Still Move 스틸 무브> 시리즈 내 아무 회차에 100자 이상 (공백포함) 댓글을 남기고 채널을 구독하신 모든 독자님께 포스타입이 100 포인트를 증정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ㅁ< 자세한 사항은 아래 포스타입 이벤...

만남

2. 여자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인 후, 연기를 천천히 내보냈다. 그리움을 끌어내는 냄새가 다시 한번 코끝에 묻자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한 번 떠오르자, 새겨넣은 것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일부러 여자를 봤다. 지금 그 사람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한심한 상황은 꿈에서라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전봇대에 기대어 담배를 물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