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우리가 그런 곳에 어떻게 가? 거기 회원제잖아.’ ‘……네? 아니 그래도 사장님이.’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빙글빙글 돌리던 손이 우뚝 멈췄다.
16. ‘식은땀 났어요. 이걸로 좀 닦아요.’ 내가 손수건을 곧장 받지 않자 한유란이 한 번 더 손수건을 내 앞으로 밀며 말했다. 나는 조심스레 손수건을 쥐고 식은땀이 느껴지는 이마를 꼭꼭 눌러 닦아냈다. 숨 쉬는 게 한결 편해졌다.
15. 음식은 따로 말해 뭐하랴. ‘진구절’처럼 이름마저 생소한 음식들도 있었지만 이름보다는 모양이 생소한 음식들이 더 많았다. 가령 우리가 주전부리라고 하면 그냥 땅콩이나 마른오징어 같은 걸 떠올리게 마련인데 여기선 색이 예쁘면서도 종잇장같이 생긴 전병과 생전 처음 맛보는 궁중식 음료가 나왔다. 그 밖의 강정이나 해물 무침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로 내가 알...
14. ‘위험하니까?’ ‘위험해요?’ ‘취향이 까다로운 편인데 새로운 곳에 도전하려면 그만큼 리스크를 각오해야 하잖아요. 나는 그게 싫어요. 그런 면에서 좀 보수적인 편이라.’ 한유란의 입에서 보수적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사자가 풀 뜯어 먹겠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13. 15분정도 빈 사무실에서 멍하니 있다가 약속 시각 5분 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보안을 점검한 후 사무실을 나왔다. 발이 유난히 무거웠다. 꼭 멱살 잡혀 끌려가듯 발을 질질 끌며 지하 주차장 VIP 자리로 갔다. 한유란의 차는 이미 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오전 마지막 일정이 외부에서 있었기 때문에 차가 여기 있다는 건 한유란이 돌아왔다는 표...
12. 나는 한유란을 피하기 시작했다. 선배들과 먹던 점심은 다이어트를 핑계로 혼자 해결했다. 굶는 날이 많았고, 혹여 아침도 못 먹고 나오는 날에는 편의점에서 간편한 먹거리를 사 와 휴게실에서 후다닥 먹었다. 커피는 탕비실을 이용하는 대신 출근길에 있는 카페에서 사 왔다. 돈이 좀 아깝긴 해도 더 맛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쉴 때도 비서실 밖으로 나가지 않...
11. ‘네?’ ‘신여운 씨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하니까 좀 설레더라고요. 근데 그게 내 착각이었다니까 약간 실망스러워요. 내가 지금 애인이랑 헤어져도, 그 싫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겠죠?’
10. ‘음, 그럴 걸 그랬나. 사실 이런 식으로 들킬 줄 알았으면 좀 더 즐기다가 보낼 걸 그랬죠.’ 한유란은 조금의 민망함도 없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로서는 그런 감각이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9. 내 말에 한유란의 여유로운 미소가 갑자기 사라졌다. ‘꼬시는 거 같아요?’
8. 불타는 얼굴에 손부채질도 한번 못 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더니 한유란은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그리고 몸을 돌려 사장실로 쏙 들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현실감이 멀었다.
7. 나는 비를 좋아했다. 정확히는 빗소리를 좋아했다. 창문에 들이치는 빗소리나, 우산에 내리꽂힐 때 투다다닥 하는 빗소리, 설탕 가루를 뿌리는 것처럼 흩뿌리는 듯한 비의 사락거리는 소리도 좋았다.
6. ‘괜찮은 거 같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프거나 화끈거림이 오래 가면 저한테 말해요.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게 한 제 잘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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